리뷰/게임 리뷰 & 분석

Doki Doki Literature Club 리뷰 - 미연시. 심리적공포.

Mingi Shin 2022. 2. 12. 22:39

(아직 전부 클리어 안 했지만 임시로 올려둡니다.)

 

※다른 대부분 리뷰어들처럼, 저 역시 '스포일러 없이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랑 생각이 같으시다면 당장 눈을 감고, 리뷰를 끄고, 게임을 받아서, 플레이 하세요.

그렇지만…… 우리가 공포나 폭력 같은 민감한 주제에 맞닥뜨릴 때, 가끔 그 조건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깐, 게임을 하기 전에 게임에 대한 언질이 필요하신 분들은 그런 부분을 읽어주세요. 게임을 끝내신 분들이 읽고 생각할만한 리뷰도 작성하겠습니다(아직 다 못 끝냈지만……).

 

최근 제 트위터 타임라인을 뒤흔든 하나의 게임이 있습니다.

 

귀여운…… 심리적 공포…… 연애 시뮬레이션……?

두근두근 문학클럽이라는, 어떻게 보면 바보같은 정도로 솔직한 연애 시뮬레이션입니다. 그렇지만 플레이한 사람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는 게임.

 

스팀 페이지를 아무리 뒤져 봐도, 반전 요소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으레 이렇게 상반된 리뷰가 있을만한 게임에는 티져 영상 마지막에 지직거리면서 끝난다든지, 깨진 문자가 있든지 하는 식으로, '뭔가가 더 있다'라는 암시를 주는 유혹을 개발자가 뿌리치기란 쉽지 않죠.

그런데 그런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이 게임은 어린이와 쉽게 불안증세에 빠지는 분들께는 적합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 뿐…….

 

저는 만화동아리 원고가 하기 싫어서 게임을 다운로드 했고, 결국 시작해 버렸습니다.

 

우선, 조금이라도 스포일러를 당하기 싫은 분은 리뷰를 읽을 때 조심해 주세요.

 

※게임 소개 (혹은 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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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옵니다.

게임이 뭔가 잘못되기 시작할 때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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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내용은 게임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플레이 하기 전 이런 장면에 대해 트리거가 있으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자살 장면

자해 장면

가정폭력 (신체 폭력, 소지품 단속, 통금)

자해 행위에 대한 폭로, 욕설

(반복적인, 무리한) 선택 강요

신체에 대한 욕설

말싸움 장면 (트라우마를 일으키도록 분위기가 설계되니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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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하기 전 이런 소재를 못 보시는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공포게임인만큼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고, 그 중엔 우리가 평소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소재가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특정한 소재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분들이 있을 거 같아 미리 작성해 둡니다. 스포일러에 주의해 주세요.

 

다음 내용은 ddlc.moe/warning.html을 참고하였습니다.

 

"Doki Doki Literature Club은 호러 게임입니다. 신중하게 받아들이세요. 만일 다음 내용이 당신에게 정신적 영향을 끼친다면, DDLC를 플레이 하지 마세요.

- 우울

- 자살

- 자해

- 학대 (또는 욕설)

 

위 리스트는 100% 완벽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본인의 정신적 건강을 걱정해서 이 페이지까지 온 거라면, 이 게임이 당신께 적합하지 않은 걸로 간주하고, 플레이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말씀드립니다.

(플레이를) 고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하세요."

 

정말로, 본인의 정신적 건강을 걱정해서 이 글을 읽고 있는 거라면, 플레이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자의 리스트에 더해 추가 리스트를 조금 작성했습니다.

 

- 구토

- 점프스케어(갑툭튀) :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래키는 것

- 글리치(색 반전, 화이트노이즈, 이미지 변조, 음악 가속 등)

- 얼굴 이미지 변조

- 얼굴 이미지 재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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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엔딩을 보세요. 그 뒤는 비슷한 분위기로 계속 진행됩니다. 그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면 관두면 됩니다.

※게임을 클리어하신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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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하는 기준은 크레딧을 보는 것입니다.

만일 크레딧을 못 보셨다면, 파일 하나를 삭제하셔야 크레딧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 뒤에 회차 플레이를 통해 모든 CG를 수집하고 클리어하면 게임 내용은 안 바뀌지만 숨겨진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진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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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i Doki Literature Club - 공략 불가 조언자 캐릭터의 반란

 

 

Doki Doki Literature Club, 줄여서 DDLC는 공략 불가 미연시 캐릭터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다음 내용은 전체 게임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주인공 캐릭터는 대인관계에 무기력하고 별 특색없이 분위기에 끌려다니는, 그야말로 '미연시 주인공'형 캐릭터입니다. 열성적이지만 늦잠쟁이에 늘 덜렁거리는 소꿉친구 사요리. 사요리가 부회장으로 있는 문학 클럽에 주인공은 억지로 끌려가게 됩니다.

문학클럽에는 인기 많은 학생 회장형 캐릭터인 모니카, 키 작은 츤데레 캐릭터인 나츠키, 긴 생머리에 말 수가 적고 쉽게 부끄러움을 타는 유리가 있습니다. 학교 축제를 앞두고 신입 회원을 맞은 문학클럽은, 우연한 기회로 매일 시를 한 수 써서 공유하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게임 초반에서 봤을 때, 등장인물 모니카는 아무리 봐도 공략 가능 캐릭터로 준비된 캐릭터는 아닙니다. 시를 쓸 때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에서도 제외되어 있고, 주인공의 시에도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그 시를 좋아할 다른 회원을 소개시켜 줍니다. 그보다 미연시에 흔히 있는 조언자 캐릭터에 가깝죠. 누가 무엇을 좋아할지, 게임 시스템은 어떤 게 있는지 조언하는 역할입니다.

그러나 게임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흔히 있는 미연시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만한 시를 쓰거나 선택지를 고르기 시작하면, 점점 캐릭터가 숨기고 있는 깊은 비밀과 우울에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하는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우울에 빠진 사요리가 자살하고 맙니다. 그리고 게임은 재시작합니다.

 

사요리의 자살 이후에, 게임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게임 폴더에는 이상한 파일이 생성됩니다. 모니카의 말투로 생성되어 있는, 사요리가 귀찮게 굴었기 때문에 지웠다는 메시지. 타이틀에서는 사요리의 전신 이미지가 원형을 알아 볼 수 없게 깨져 버립니다.

여기서부터 공포게임의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사요리는 게임에서 지워진 채로, 등장하려고 할 때마다 글리치와 함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장면이 다시 시작합니다.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글리치. 훼손되는 캐릭터의 얼굴과 대사. 누군가 악의를 가진 듯 게임은 미연시 시스템을 최대한으로 악용해서 사용자를 놀래키고 겁줍니다.

캐릭터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어색하지만 아무일 없는 듯 굴러갑니다. 그렇지만 캐릭터들이 주인공에게 가지는 집착은 병적으로 커집니다. 결국, 상황은 끔찍한 파국을 맞습니다. 유리의 자기파괴적 애정은 결국 유리의 충동적 자살로 이어집니다.

축제 날이 되어 이 모든 상황을 발견한 모니카는 끔찍하리만큼 침착하게 대응합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자신을 제외한 캐릭터를 모두 지우고 게임을 재시작합니다. 다시 게임을 켜면 모니카와 마주보며 대화하는 것 밖에는 불가능한 게임이 됩니다.

모니카는 자신의 의도를 밝힙니다. 게임 세계에 갇힌 캐릭터. 비합리적으로 주인공에게 집착하는 캐릭터들 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본인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니카는 거기서 유일하게 의식을 가진 다른 존재를 찾아냅니다. 주인공을 조종하고 있는 플레이어입니다. 모니카는 게임에서 유일하게 기계장치가 아닌 플레이어와 사랑에 빠지지만, 게임은 공략 불가 캐릭터인 모니카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본인을 주목하길 바랐지만, 다른 캐릭터를 선택하는 주인공을 보고 모니카는 게임을 변조해서 다른 캐릭터들을 싫어하게 만드려 노력합니다. 캐릭터의 컴플렉스를 강화시키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몰고 가고, 그것도 부족한지 캐릭터의 얼굴을 덮어씌우고, 대사를 덮어씌우는 등 플레이어가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게임은 점점 불안정해졌습니다.

이렇게, 모니카가 그토록 바라던 연애 시뮬레이션이 완성됩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 보며 말할 주제가 떠오를 때마다 대화하는 게임. 그러나 플레이어는 여기에 환멸을 느끼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모니카가 한 방법을 따라, 플레이어는 모니카의 캐릭터 파일을 지웁니다. 게임을 켜면 모니카는 자신의 캐릭터 파일이 사라진 것을 알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곧 자신이 다른 클럽 회원들 역시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과 플레이어 모두에게 좋은 선택을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게임은 재시작되고, 모니카를 제외한 모두가 돌아온 채로 첫번째 날이 진행됩니다. 모두가 행복해 보입니다. 특히 사요리가요. 그렇지만 곧 반전이 일어납니다. 사요리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었고, 다시 한 번 주인공에 대한 집착을 일으킵니다. 거기서 누군가가 끼어듭니다. 모니카가 사요리를 막고,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게임은 모니카가 줄곧 플레이어를 위해 연습해왔다던 피아노 곡으로 끝을 맺습니다. 모니카는 모든 게임 데이터를 지웁니다.

!! 이전 내용은 전체 게임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음, 사실 미연시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공포게임이라고 정의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파일 생성/삭제, 대사 덮어쓰기, 이미지 덮어쓰기, 로그 변조, BGM 변형 등등…….

그렇지만 그리 길지 않았고, 실험적인 시도 이상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연시라는 틀의 한계, 악의를 가진 흑막을 가정한 점 등등 때문인지, 공포 요소도 갈수록 억지스러워지는 면이 많았습니다.

메타픽션 게임으로 보기에도 아쉬운 점은 남습니다. 공략불가 캐릭터가 게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테마는 좋지만, 볼륨이 작은 탓인지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심할 정도로 평면적이고 스테레오타입적인 캐릭터 구성과 이용도 조금 아쉬운 면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의도된 바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일부러 정말 평면적인 '미연시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클리셰를 파괴하는 형식으로요.

모니카가 처음에는 의도도 불명확하고 평면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게임 후반을 통해서 인간적인 캐릭터로 거듭난 거 같습니다. 주인공에게 왜 빠졌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면은 아직 있지만 그래도 미연시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 등을 들어서 설명하려면 설명할 수 있죠.

 

선택지 시스템을 응용해서 '시'를 쓴다는 매커니즘도 꽤 신선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게임에 얼마나 많은 떡밥이 숨어있는지 보고 나니 개인적으로는 거기에도 뭔가 비밀이 더 숨어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요.

그리고 주인공 짜증나네요. 대놓고 '이 여자아이들과 관계를 진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는 장면에서는, '그런 게임을 하기 위해 미연시를 플레이 하는 플레이어에 대한 조롱'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힘들 정도로 너무 부담스럽게 플러팅을 해대서…….

 

사실, 미연시와 메타픽션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미 유명작을 하나 알고 있죠. 뭔지 모르시고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으신 분들이 있을 테니 굳이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먼저 플레이 해 봤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공포게임으로서…… 이 게임이 공포게임으로서 존재하는 분량은 의외로 길지 않습니다. 첫 엔딩이 끝난 뒤 플레이어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그 뒤에는 3일차에서 4일차 정도까지 밖에 진행되지 않습니다. 저는 첫 엔딩이 끝난 뒤 '이런 식으로 엔딩을 세 번이나 봐야 된다니 너무 무서운데'라고 생각했거든요. 의외로 해방의 시간(?)은 빨리 찾아왔습니다. 함께 학교에서 밤을 지새우는 이벤트와 함께…….

제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연출은 타이틀 페이지 변화랑 SD 캐릭터였습니다. 그 외는 그나마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그 덕에 2회차에서 유리가 좋아할 만한 선택지는 고르지도 못했습니다.

만일 게임을 아직 안 해 보신 분들이 있다면, 그렇지만 이 글을 읽고 계실 정도로 관심이 생기셨다면 한번쯤 용기를 내셔서 해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여전히 네타게임의 범주고, 미연시인 척 하는 공포게임으로 유명세를 얻었고, 명작이라고 할 정도로 좋은 게임은 아니지만, 개발자의 언급에서 엿볼 수 있듯 신선한 시도가 돋보이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게임을 다 끝난 후에도 즐길 거리가 남아 있으니 찾아봐 주세요. 우선 모든 CG 수집부터 시작하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그리고 chr 파일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요? 스팀 페이지의 유저 포럼에도 많은 내용이 있으니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전 이제 정말 만화동아리 원고를 하러 가야겠습니다.

 

p.s.

한국어 패치가 나왔습니다. 

https://twitter.com/RealBucheon/status/948178662322462723

https://sites.google.com/view/dokidokikor/home

정말 친절하고 잔인하네요.